[클림트] 구스타프 클림트 작품 키스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

황금으로 그려낸 연인들의 사랑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는 1907년부터 1908년까지의 이른 바 황금시기의 대표작이다. 가로 180cm, 세로 180cm의 대형작품으로 아름다운 황금빛으로 매우 유명하다.
클림트는 1903년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라베나의 산비탈레 성당의 천국을 묘사한 황금 모자이크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 후 황금을 그림에 표현하는 방법을 고민했지만 물감으로는 클림트가 원하는 황금의 빛깔을 표현할 수 없었다.

이때 클림트 매우 비범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되는데 물감으로 금빛을 표현하는게 아닌 실제 황금을 그림에 사용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금을 얇게 핀 금박을 일일히 그림 위에 붙임으로서 물감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웠던 진짜 황금빛을 표현할 수 있었다.
클림트가 금박을 그림에 이용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된 데에는 보헤이마 출신의 금 세공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클림트의 그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기하학적 무늬와 금박장식은 회화라기 보다는 공예품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주는데 아버지의 작업을 곁에서 지켜본 영향이 아닐까 생각된다.
'키스'는 원래 제목이 아니었다?
1908년 그림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의 제목은 'Liebespaar'로 번역하면 '연인'이 된다. 언틋 뇌리에 꽂히지 않는 평이한 제목의 그림이었으나 클림트가 몇 번의 수정을 거쳐 다시 작품을 공개하였을 때 조금은 도발적인 단어인 키스(Der Kiss)로 제목이 바뀌게 된다.
그림이 주는 아름다움도 뛰어나지만 키스라는 관능적인 제목은 어떤 이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클림트의 작품 중에는 유디트, 아델르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등 키스보다 더 화려하고 진보된 금 세공 기법이 적용된 작품들도 있지만 대중들은 키스를 클림트의 대표작으로 인식하는 데에는 제목이 주는 강렬함도 한 몫 한다는데에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키스'는 정말 연인사이의 행복한 사랑을 그리고 있을까?
언틋 보기에 연인 사이의 순수하면서도 애틋한 스킨십을 그려낸 것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위태로운 부분이 눈에 띤다. 화려함에 감춰져 있다만 두 연인이 몸을 둔 곳은 다름아닌 절벽 끝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의 밀어를 나누기에 적합한 장소는 아니다. 왜 두 남녀는 이렇게 위태로운 장소에서 키스를 나누고 있는 것인가?
일반적인 해석으로는 클림트가 그의 연인 에밀레 플뢰게에게 사과의 의미로 그린 작품이라는 설이 있다. 클림트는 작품 제작이 끝나면 모델들과 육체관계를 맺는 등 엽색행각이 심한 인물이었다. 정작 연인인 플뢰게와는 육체관계 없이 정신적 사랑을 나누는 관계였다고 한다. 클림트의 여성편력에 지친 플뢰게는 그의 곁을 떠나게 되었고 그제서야 자신의 행동을 후회한 클림트는 플뢰게에게 사과하기 위해 '키스'를 그렸다는 것이다. 이 설에 따르면 절벽에서 떨어지려 하는(클림트를 떠나려고 하는) 플뢰게를 클림트가 말리면서 키스를 하는 장면이 된다.
이러한 세간의 평에 대해 클림트는 '키스'의 모델은 자신이 아니라고 부정하였다. 클림트에게 있어 자기 자신은 그다지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주제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클림트의 부정에도 불구하고 키스의 모델은 클림트와 플뢰게라는 설은 여전히 힘을 잃지 않고 있다. 화가가 필생의 역작으로 연인에게 사과하여 마음을 돌이킨다는 스토리는 대중들을 매혹시켰기 때문이다. 실제로 키스의 발표 이후 클림트와 플뢰게는 재결합 했기 때문에 이러한 심증은 더욱 굳어지게 되었다.
오스트리아에 가면 반드시 보아야할 한 가지
클림트의 키스는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벨베데레 미술관은 본래 합스부르크 왕가 소유의 궁전으로 그 이름은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에 의해 명명되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미술관으로 바뀌게된 것이다.

클림트의 키스는 벨베데레 미술관에서 특급 대우를 받는 작품이다. 특유의 황금빛이 더욱 도드라져 보이도록 하기 위해 검정색으로 칠해진 벽면 전체를 홀로 차지하고 있다. 르브르에 소장된 모나리자가 받는 보안조치에 못지 않게 엄중한 보안조치 하에서 관람이 이루어지고 있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관광객들에게 "오스트리아에 와서 반드시 보아야할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클림트의 키스이다."라는 말을 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만큼 클림트는 오스트리아의 국민 예술가로 사랑 받고 있으며 언제 벨베데레 미술관에 가든지 키스 주위에는 관람객들이 가득차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본명 :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사조 : 상징주의, 아르누보(Art Nouveau)
국적 : 오스트리아
출생 : 1862년 7월 14일
사망 : 1918년 2월 6일
작품목록
- 키스
- 농장 정원
- 아테제 섬
- 아테제
- 쇤브룬 공원
- 장미나무 아래에
- 사과 나무
- 부채를 든 여인
- 여성의 세 시기
- 헬레나 클림트의 초상
- 음악
- 생명의 나무
- 닭들이 있는 정원
- 자작나무 숲
- 리치버그 아테제
- 아테제 호수의 캄머 성
- 숲속의 작은 집
- 다가오는 뇌우
- 늪
- 아터 호숫가
- 유제니아 프리마베시의 초상
- 에히트 남작부인의 초상
- 메다 프리마베시의 초상
- 여인의 초상